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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패권을 둘러싼 피의 전쟁(5)

by 더 클라우드 2025. 8. 13.

1.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에 기대어 영웅이 된 푸틴

 소련 해체로 생성된 독립 국가들과 러시아의 최우선 과제는 변환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경제적 안정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가 경제적으로 연착륙하도록 돕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클린턴 대통령과 국제통화기금(IMF)은 러시아 연방의 초대 대통령 보리스 옐친을 지원해서 러시아 경제가 소생하도록 도왔다.

 하지만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전환은 쉽지 않았다. 새로운 체제와 자유민주주의의 결합은 삐걱거리며 곳곳에서 불협화음이 발생했다. 러시아 정부 내 부패는 만연했고, 금융 기관은 새로운 금융 체제를 구축하는 데 무능했다. 결국 1998년에 만성적인 재정적자와 재정 경영 미숙 등으로 러시아 정부와 러시아 중앙은행은 루블화를 평가절하하고 부채를 상환하지 못하는 금융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러한 경제 위기로 인한 소득 불평등과 빈부격차의 폭발적인 증가는 자본주의 체제로의 전환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불만을 증폭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2000년에 블라디미르 푸틴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국민들은 그가 약 10년간 지속된 러시아의 혼란을 잠재우며, 부강하고 강한 러시아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푸틴은 특권계층을 척결하고, 러시아의 경제를 일정 부분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러시아가 1998년 금융위기를 벗어나게 된 일차적인 배경은 석유 및 천연가스의 국제 가격이 상승했기 때문이었지만, 푸틴의 재임 기간 중에 경기가 회복되면서 푸틴의 인기는 높아갔다. 이러한 인기에 편승해서 푸틴은 2004년 선거에서 러시아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재집권에 성공했다. 푸틴은 계속해서 강한 러시아 건설을 외치고 자신의 카리스마를 과시하며 '스트롱맨' 이미지를 부각했다. 그는 또한 반서방 외교를 기조로 러시아의 패권을 유지하려고 했고, 이를 위해서 크림반도 강제 합병과 같은 러시아의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등 포퓰리즘 정책을 펴면서 인기몰이를 했다.

 푸틴은 러시아가 그동안 어렵게 획득하고 세워나가고 있던 민주주의를 파기하고 갈수록 일인 독재 종신 집권 체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70여 년간 지속된 공산주의 체제가 자유민주주의의로 전환되기 위해선 수많은 시행착오와 혼란이 따른 수밖에 없었지만, 러시아인들은 현실에 불만이 컸으며, 그 불만은 미족주의에 위험한 토양을 제공했다. 결국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에 기댄 푸틴이 러시아의 독재자이자 영웅이 되었다. 민주주의에 낯선 러시아인들은 독재의 위험성보다는 민족의 자긍심을 높여줄 영웅에 환호했다.

 

 2. 갈등의 시초가 된 크림반도 무력 병합

 푸틴은 강한 러시아 건설에 전념하면서 우크라이나를 러시아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우크라이나 내정에 간섭하기 시작했다. 2004년 우크라이나 선거에서 푸틴은 친러시아 성향의 빅토르야누코비치가 당선되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야누코비치는 부정선거 의혹으로 당선이 취소되고 다음 해 초에 재선거에서 친서방 성향의 빅토르 유시첸코에게 패배했다.

 2008년 유시첸코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우크라이나의 나토가입을 모색하자 푸틴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하는 등 경제 압박을 통해 유시첸코 정부를 압박했다. 게다가 그해 터진 세계 금융 위기로 말미암아 우크라이나 경제가 휘청거렸다. 국민들은 경제 회복에 자신감을 드러낸 야누코비치에게 기회를 줘서, 2010년 선거에서 야누코비치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야누코비치는 언론 탄압과 정실 인사, 그리고 부패 등으로 국민들의 원성을 샀다. 무엇보다도, 푸틴의 영향력에 따라 그가 유럽연합과의 경제 협력보다는 러시아와의 무역 거래등에 치중하는 등 노골적인 친러 정책을 시행하자, 국민들은 분노했다. 2014년 2월 야누코비치 타도를 외치는 소요가 일어나서 100명 정도의 시위자들이 목숨을 잃는 사태가 발생했다. 결국 야누코비치는 러시아로 망명하고 말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러시아는 2014년 3월 무력으로 크림반도를 병합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에 따라 러시아계가 주를 이루고 있던 우크라이나의 동남부 지역에서 친러시아 세력들이 민병대를 조직해서 우크라이나로부터의 분리와 러시아 병합을 외치며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충동하기 시작했다. 특히 돈바스 지역에서 양 세력은 강력하게 대치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돈바스 지역 내의 러시아계 분리주의자들이 반우크라이나 무장 세력의 주를 이루었으나 점차 러시아 시민들이 합류하면서 반군조직의 80%를 차지하게 되었다. 또한 대포를 비롯한 각종 무기들이 러시아로부터 유입되면서 전쟁은 사실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확대되고 있었다.

 결국 2022년 2월 24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적인 침공을 개시했다. 푸틴은 군사 작전의 목표가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 우크라이나의 나토 및 유럽연합 가입 저지 및 중립 유지, 그리고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자행된 러시아인 집단 학살을 종식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키이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전역에 미사일을 발사했다. 본격적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이 시작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전쟁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우크라이나는 물론이요 러시아도 많은 희생자를 낳고 있으며, 특히 600만 명이 넘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고향을 떠나 배회하고 있다. 전쟁은 에너지와 식량 공급 문제를 야기하며 세계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군사적으로 보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상대가 되지 않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NATO 회원국들과 미국의 우방들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나라를 지켜내려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의지가 높기 때문에, 전쟁이 러시아가 원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러시아 국민들도 전쟁에 열광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왜 푸틴은 전쟁을 시작했고, 상황이 유리하지도 않은데 전쟁을 계속하고 있을까?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이 의문은 오랫동안 미스터리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역사가 주는 공통적인 교훈은 독재자의 말로는 비참하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독재자가 나올 수 없는 제도와 의식을 확립하는 것이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 얼마나 소중한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