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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4천 년 만에 대륙의 나라에서 해양 강국을 꿈꾸다

by 더 클라우드 2025. 9. 12.

 

 2006년 10월, 1천 피트급 미국 항공모함 키티 호크 호가 이끄는 초대형 미 해군 함대가 일본 남부와 대만 사이에 있는 동중국해를 통과하고 있었다. 그때 주목할 만한 사건이 벌어졌다. 중국 해군 잠수함이 아무런 경고도 없이 미 항공모함 군단 사이에서 불쑥 솟아오른 것이다.

 보통 그 사이즈의 미국 항공모함이 이동할 때는 대략 12대의 다른 전함들이 에워싸고 공중은 물론 잠수함의 엄호도 따른다. 중국의 송 클래스 잠수함은 동력이 전기라 매우 조용할지는 모르지만 그럼에도 이 행동은 마치 펩시콜라의 경영자가 코카콜라 사 회의장 책상 밑에 숨어서 한 시간 반 동안 몰래 엿듣다가 벌떡 일어선 거나 마찬가지인 사태였다.

 미국은 중국의 이 같은 행동에 한편으론 감탄했지만 화가 난 것도 사실이었다. 감탄이라 함은 중국 잠수함이 그토록 쥐도 새도 모르게 움직이 ㄹ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였고, 화가 난 것은 정작 자신들이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미국 측에서 보면 중국의 그 같은 행동은 엄연한 도발이었다. 특히 중국 잠수함이 키티 호크의 어뢰 방어망 내에 있었다느 점에서 더욱 그러했다. 미국은 그 즉시 항의했다. 그런데 이 항의의 정도가 너무 심했던지 되돌아온 중국의 대답은 이러했다.

 "이런! 우리 앞바다라서 별 생각 없이 그랬는데 그게 당신네 함대 한복판이었다니, 그런 우연의 일치가 있나요!"

 이것이 21세기에 뒤바뀐 외교의 한 단면이다. 지난날 영국이 자국의 의도를 알리려고 약소국의 연안에 군함을 배치했다면, 중국은 자국의 해역에서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어 다음과 같은 뚜렷한 메시지를 날린다.

 "이제 우리도 해상국가다. 우리의 시대가 왔고, 여기는 우리 영토다."

 무려 4천 년이나 걸린 셈이지만, 어쨌든 중국이 우리와 가까운 항구(그리고 해상 항로)로 다가오고 있다.

 이제껏 중국은 변변한 해군력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광활한 땅덩어리와 긴 국경선, 그리고 짧은 바닷길 덕분에 굳이 해양 세력이 되어야 할 필요성이 없었다. 게다가 중국은 이념적으로도 거의 팽창을 시도하지 않았다. 중국의 상인들은 머나먼 곳을 향해 긴 시간을 항해해서 교역을 했지만 중국 해군은 자기 지역을 벗어나서 영토 확장을 꾀하지는 않았다. 여기에는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이라는 광대한 해상항로를 정찰해야 하는 데 따른 어려움도 한몫했을 것이다. 중국은 광활한 땅과 14억에 육박한느 막대한 인구를 자랑하는 어디까지나(육상 병력)의 나라였다.

 

 1. 한족의 탄생에서 군사대국을 꿈꾸기까지

 

 중국이라는 개념을 사람이 거주하는 하나의 실체로 보려면 거의 4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중국 문명의 발원지는 중국식으로 중원이라 언급되는 북중국평원이라고 알려져 있다. 내몽골 아래, 만주 남부, 그리고 황허 안쪽과 주의를 끼고돌아 양쯔강 하부를 지나는, 그 넓이만도 거의 43만 2천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평원이 동서로 넓게 펼쳐져 있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빌집한 지역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황허 유역은 홍수에 따른 잦은 범람으로 <한족 자손의 골칫거리>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얻었다. 이 지역은 1950년대 초반 공업화가 시작되고 나서 지난 30년간 엄청난 속도로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 대가로 얻게 된 심하게 오염된 강은 유독성 폐기물로 인해 이따금 바다로 흘러들어 가는 것이 힘들 정도로 꽉 막히곤 한다. 그럼에도 황허는 중국에게는 나일 강과 같은 존재다. 인간으로 하여금 경작을 배우고 종이와 화약을 만들게 했던 문명의 요람인 것이다.

 중국 본토의 심장부 북쪽에는 현재 몽골 영토인 혹독하기로 유명한 고비 사막이 펼쳐져 있따. 서쪽은 지형이 점차로 높아지다가 티베트 고원이 되고 이윽고 히말라야에 이른다. 남동쪽과 남쪽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다.

 북중국평원으로 알려진 중국의 심장부는 예나 지금이나 주요 강 두개가 흐르는 넓고 비옥한 평지다. 쌀과 콩의 이모작이 가능한 기후 덕분에 인구도 급속도로 늘었다. 기원전 1500년 무렵, 이 지역에서는 수백 개에 달하는 소규모 도시 국가들이 서로 다투고 있었는데 여기서 가장 초기 고대 국가 형태인 상 왕조가 탄생했다. 중원이 심장부를 지키고 자신들 주위에 완충지대를 만들면서 훗날 한족이 되는 민족이 탄생한 것도 이곳이었다.

 현재 한족은 중국 인구의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면서 중국의 정치, 경제를 지배하고 있다. 이들의 언어는 만다린어, 광둥어 및 다른 여러 지방 언어들로 나뉘지만 민족적으로 하나로 묶이며 정치적 차원에서도 심장부를 지키려는 지정학적 욕구를 통해 한나로 묶여있다. 북부에서 유래한 만다린어는 현재까지 정부는 물론 국영 방송과 학고에서 사용하는 주요 언어다. 만다린어는 문자로 썼을 때는 광둥어나 여타 다른 언어들과 같은데 다만 발음할 때는 현저히 달라진다.

 북중국평원은 정치, 문화, 인구, 그리고 결정적으로 농업의 중심지다. 이 지역에 무려 10억의 인구가 모여 살고 있다. 면적은 3억 2천 2백만 명이 사는 미국의 절반 크기에 불과한데 말이다. 이 심장부의 지형이 정착과 농경생활에 적합했던 관계로 초기 한족 왕조들은 자신들을 에워싸고 있는 이민족들의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용맹한 유목민 전사들을 보유한 몽골은 항상 두려운 존재였다.

 중국 또한 러시아와 동일한 전략, 다시 말해 <방어로서의 공격>을 통해 힘을 얻는다는 전략을 택했다. 이는 먼저 내부를 평정하고 확장한 다음에 바깥 세계로 움직인다는 전략을 말한다. 물론 이 땅에도 천연 장벽들이 있어서 한족이 거기까지 도달해서 지배할 수만 있다면 자신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천 년이 넘게 걸리는 싸움이었다. 그리고 60야 냔 잔, 티베트를 병합하면서 중국은 이를 온전히 깨달았다.